일본 영화계에서 가족 서사를 이야기할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름은 빠질 수 없습니다. 그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을 넘어, 유사 가족, 해체된 관계, 사회적 소외 속의 연대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해 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가족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그의 연출이 어떻게 관객을 울리는지를 분석합니다.
일본 영화 속 가족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항상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혈연 중심의 가족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대표작인 《아무도 모른다》(2004)는 버려진 아이들이 스스로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생물학적 아버지와 양육의 의미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모를 통해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특히 《어느 가족》(2018)은 고레에다의 가족 서사 정점을 보여줍니다. 서로 혈연이 아니지만 따뜻한 정으로 뭉친 한 가족이 주인공이며, 그들이 보여주는 공동체성은 전통 가족의 기능이 무너진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연결’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작품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도 고레에다의 주제의식이 보편적 공감을 얻는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고레에다의 가족영화는 슬픔이나 갈등을 겉으로 드러내기보다, 일상적인 대화와 침묵, 반복되는 식사 장면 등을 통해 정서를 전합니다. 그는 말보다 ‘공기’를 연출하는 감독으로,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묘한 거리감과 사랑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가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그것이 여전히 의미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의 시선은 일본 영화계는 물론 세계 영화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고레에다 영화의 사회 메시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 이야기를 단순한 드라마가 아닌,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는 틀로 활용합니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가족들은 늘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거나, 제도적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이는 일본 사회의 계층 구조, 양육 시스템, 교육, 돌봄 문제 등을 은근하지만 강하게 비판하는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브로커》(2022)는 고레에다가 처음으로 연출한 한국 영화이지만, 그의 세계관이 얼마나 국경을 초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베이비 박스'를 소재로 버려진 아이, 아이를 되파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떠나는 여정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아이의 존재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말합니다. 아이를 중심으로 비혈연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따뜻한 감정이 싹트는 과정은 고레에다 영화의 전형적 패턴이자 핵심입니다. 그는 “정상 가족”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얼마든지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설득합니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거리, 죽은 형을 잊지 못하는 가족의 슬픔이 고요한 일상 속에 녹아 있으며, 이는 일본 사회의 정서적 유산과도 연결됩니다. 고레에다의 영화는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 가족을 통해 그 문제를 비추는 방식으로 설득력을 높입니다. 관객은 가족 이야기를 보다가 어느새 사회의 문제, 제도의 허점을 발견하게 되며, 그런 감정이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 기법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연출 자체가 매우 조용하고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는 인위적인 갈등이나 클라이맥스를 피하고, 대신 인물들의 ‘말하지 않는 감정’을 통해 서사를 이끌어갑니다. 이는 다큐멘터리 연출 경력에서 비롯된 그의 관찰자적 시선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고정된 카메라와 자연광을 활용하며, 일상적인 장면들—예를 들어 식사, 걷기, 잠들기—을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관객은 그 반복을 통해 인물에 몰입하고, 관계의 미묘한 변화를 체감하게 됩니다. 또한 인물의 표정보다는 ‘침묵’ 속 분위기를 연출하며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은 다른 감독과 확연히 구분됩니다. 고레에다의 대사는 짧고 간결하지만, 여운이 길며 상징적인 힘을 지닙니다. "당신이 태어난 건, 틀림없이 잘못이 아니야." 같은 대사는 특정 장면의 맥락을 넘어 영화 전체의 메시지로 확장됩니다. 배우의 연기도 강한 연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표정 위주로 디렉션하며, 일반인에 가까운 현실성을 추구합니다. 그의 연출 스타일은 화려하지 않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힘이 있습니다. 이는 고레에다가 ‘눈물 흘리게 하는 법을 아는 감독’으로 불리는 이유이며, 그만의 영화 미학이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본 영화계에서 ‘가족의 의미’를 끊임없이 재정의해온 감독입니다. 혈연이 아닌 관계에서 피어나는 연대, 조용한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 그리고 가족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적 통찰은 그의 작품을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선 예술로 만듭니다. 지금 그의 대표작들을 천천히 감상해보세요. 당신이 알고 있던 ‘가족’이라는 개념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